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들의 맹목적인 달리기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퇴근 후 최고의 휴식은 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누워 넷플릭스를 틀고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마시는 것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매년 야금야금 늘어만 가는 체중과 조금만 계단을 올라도 쉽게 찾아오는 숨 가쁨은 가벼운 동네 산책조차 점점 부담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덜컥 다가온 건강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저는 충동적으로 가을에 열리는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평소 동네 운동장 한 바퀴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던 저의 무모한 도전은, 이후 몇 달간 혹독한 육체의 고통과 인내를 수반했지만, 역설적으로 제 인생에서 경험한 가장 정직하고 황홀한 몰입의 시간을 안겨주었습니다.
1. 처음 3km 러닝에서 맞닥뜨린 폐부의 고통과 처참한 멘탈 붕괴
마라톤 신청 직후 자신만만하게 비싼 기능성 런닝화를 새로 사고 한강 공원으로 나섰던 첫날의 기억은 지금도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시작 전 스트레칭을 가볍게 흉내 내곤 상쾌한 조깅의 느낌으로 당차게 뛰어 나갔지만, 불과 1km도 채 달리지 못해 심장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고 종아리 근육이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건조해진 입안에서는 피비린내가 훅 피어올랐고 호흡은 제멋대로 엉켜 짐승처럼 헐떡이기 바빴습니다. 결국 무난하게 3km를 목표로 했던 첫 달리기 연습은 절반 이상을 터덜터덜 걷고 쉬는 것으로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지나가는 자전거 라이더들과 가볍게 제 곁을 스쳐 지나가는 노년의 베테랑 러너들을 쳐다보며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멘탈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10km라는 거리는 제게 도달 불가능한 거대한 절벽처럼 느껴졌고, 비싼 참가비를 그냥 공중에 버리더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매일 밤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2. 멈추지 않는 페이스 조절의 예술과 하프 구간의 끔찍한 위기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비겁한 마음을 다잡고 유튜브와 다양한 러닝 동호회 커뮤니티의 조언을 받아들여, 호흡법을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내쉬는 짝수 박자로 바꾸고 보폭을 좁게 줄여 발병착에서 오는 무릎 충격을 최소화하는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마침내 마라톤 대회 당일,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그 웅장한 아드레날린은 엄청났습니다. 군중의 빠른 속도와 환호성에 휩쓸려 초반 오버페이스를 심하게 해버린 탓에, 초보 러너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5km 하프 지점을 통과할 무렵 허벅지에 쥐가 나듯 찌릿한 근육 경련이 찾아왔습니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져 땅에 질질 끌렸고 뇌에서는 당장 걷자고 끊임없이 달콤한 유혹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발바닥 안쪽에 큼지막하게 잡힌 물집이 터지는 고통에 휩싸여 스펀지처럼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이 수백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등 뒤에서, 그리고 제 옆에서 호흡을 맞추며 묵묵히 뛰어가는 이름 모를 타인들의 치열한 땀방울을 보며, 속도는 느려지되 절대 두 발을 멈추지는 않겠다는 저 자신과의 처절한 약속을 붙잡고 부서질 듯이 발을 굴렀습니다.
3. 10km 결승선 통과가 안겨준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눈물
눈앞에 큼지막한 ‘결승선(Finish Line)’ 간판이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한 마지막 눈물의 1km 구간, 신기하게도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 탈진 상태에 다다랐는데 정신은 놀랍도록 맑아지고 고통이 사라지는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신비로운 감각이 전신을 감쌌습니다. 턱 끝까지 차올랐던 가쁘고 괴로운 숨소리마저 박자가 딱딱 맞는 일정한 규칙의 배경 음악처럼 들렸고, 제 두 다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살아 움직여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듯한 기묘하고 짜릿한 해방감을 경험했습니다. 마침내 1시간 남짓의 기나긴 사투 끝에 푹신한 매트리스로 된 결승선을 밟고 타이머가 멈추는 순간, 뻐근한 무릎을 짚고 쏟아낸 거친 숨결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태해진 내 몸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무기력했던 지난날의 제가, 오로지 두 다리의 정직한 움직임과 인내만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물리적 성취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10km 마라톤 완주는 주말에 소소하게 자랑할 만한 가벼운 레저 이벤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극강의 신체적 한계 지점에서 스스로의 내면과 치열하게 대화하고 싸워야만 했던 저의 그 1시간의 달리기는, 앞으로 인생의 어떤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무서운 통제감과 자신감을 제게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변함없이 다시 런닝화 끈을 꽉 동여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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